"탁월한 감 최태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
"김지영, 고난에도 매번 화려한 부활 경이롭다"
광주시립발레단 20년만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
3차례 연기 끝에 두좌석 띄워 18~20일 공연
김지영 특별출연, 국립퇴단후 첫 대극장 전막
"김지영, 고난에도 매번 화려한 부활 경이롭다"
광주시립발레단 20년만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
3차례 연기 끝에 두좌석 띄워 18~20일 공연
김지영 특별출연, 국립퇴단후 첫 대극장 전막
시간은 1988년으로 거슬러간다. 서울 역삼동 자동차정비센터 건물 2층 진수인 선생의 무용학원에 구정초 5학년 김지영이 렛슨을 받고 있다. 진 선생을 잘 아는 국립발레단 무용수 최태지는 우연히 그곳을 들러 김지영을 봤다. 정말 예쁜 아이구나, 최태지는 한동안 눈을 못뗐다.
3년 뒤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에서 최태지는 키트리 역을 맡았다. 그때 예원중 2학년 김지영이 큐피드로 나왔다. 이 무대가 김지영의 생애 첫 발레 데뷔였다. 훌쩍 세월이 흐른 1997년. 30대 최연소 단장으로 국립발레단을 2년째 이끌던 최태지 앞에 러시아 명문 발레학교 바가노바 졸업생 열여덟살 김지영이 서 있다. 당시 다들 대학을 가라고 권했건만 김지영은 과감히 프로무대를 택했다. 그해 국립발레단에 입단, 바야흐로 한국 발레계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마스크를 쓰고 두 사람을 만났다. 지금 최태지(61)는 광주시립발레단장, 김지영(42)은 경희대 무용과 교수이자 여전히 무대를 누비는 현역 발레리나다. 최 단장과 김 교수는 18∼20일 광주시립발레단이 20년만에 올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앞두고 주말 잠시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김 교수는 오로라 역으로 4회 공연 중 2회차에 특별캐스팅됐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을 퇴단한 이후 대극장 전막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는 이들에게 힐링의 장소인 모양이었다. "광주 가는 기차에 앉아있으면 그저 편안합니다." 최 단장의 말에 김 교수는 적극 공감했다. 광주시립발레단에 타지 출신 수장은 최 단장이 최초다. 2017년 단원들 투표 결과 높은 지지로 영입됐다. "정말 아무것도 안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몇번이나 도망가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보면 그래도 할 일이 남았던 건가 봅니다."
이 작품은 출연진이 많아 엄두가 안났던 것도 사실이다. 광주시립발레단으로선 지난해 단원 10명이 충원되면서 비로소 올릴 수 있게 된 공연이다. 하지만 마지막 무대 막이 오를 때까지 모두가 살얼음이다. 코로나19로 치른 홍역이 수차례다. 당초 5월 예정됐던 공연은 재유행이 번지면서 7월로, 다시 10월, 그리고 지금 12월로 연거푸 미뤄졌다. 혹여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조치가 이번 공연 직전 내려진다면, 내년에라도 기필코 무대에 올리겠다며 최 단장은 의지를 불태웠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 안무가 출신 마리우스 프티파 버전을 130분 분량으로 줄이고 애니메이션을 가미한 형태다. 김 교수가 맡은 오로라는 고전발레 정석같은 존재다. "기본기가 정말 중요한 역할이에요. '백조의 호수'를 할 때보다 더 어려워요. 화려한 테크닉은 없지만 손가락 세세한 움직임까지 디테일이 굉장합니다." 김 교수의 말이다. 최 단장은 "40대 오로라는 그 자체로 신화다. 튀튀 의상 아래로 하반신 라인이 다 드러난다. 극한의 훈련없이는 무대에 설 수가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광주발레단의 '파키타'에도 같이했다. 그의 캐스팅은 단원들에게 충만한 활력소였다. 지도를 병행했던 그는 "1년 전과 비교해 단원들 기량이 놀라보게 좋아졌다"고 평했다. 호랑이 선생님 최 단장이 등장하면 단원들은 긴장한다. 김 교수는 "잘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한국 발레계 상징적인 인물이다. '관계자'만으로 채웠던 그들만의 객석에 광범위한 일반 대중을 유료관객으로 불러들여 결국에는 전석 매진 신화를 이뤄낸 주역이다. 김지영 입단 이듬해 또다른 러시아 발레학교 졸업생 김주원까지 가세하면서 탄력은 더 붙었다. 10대 발레리나들을 과감히 주역으로 밀어부친 이는 역시 최 단장이다. 발레계 팬덤 문화는 그때 생겨났다. 수많은 '김지영 키즈'가 세계 무용 콩쿠르를 휩쓸며 해외 발레단으로 뻗어나갔다.
최태지·김지영의 삶은 지칠 줄 모르는 발레 인생이다. 김 교수는 최 단장을 두고 "직감, 예감 이런 감들이 압도적이다.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힘이 있다. 지금의 나도 그래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 단장은 "지영이는 부상이 많아 안아픈 데가 없다. 재활을 달고 산다. 그런데도 항상 일어선다. 경이롭기 그지없다"고 했다. 30년 동행길 두 사람은 그렇게 하루하루 맹렬히 뛴다. 공연은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마스크 쓰고 두 좌석 띄어앉기 등 방역수칙에 맞춰 진행된다.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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